미적가치와 삶/대륙

예술의 자율성 개념, 유미주의에 대한 비판

DDTKk 2016. 9. 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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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자율성: 예술을 정신적 가치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이해함.

진, 선, 실용성 등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미학이념.

 

예술의 자율성 이념은 교회권력이 약화되고 봉건귀족체제가 붕괴하면서 성립됨.

예술가들은 혁명 이후 교회나 제후 등 기존의 후원 체계에서 벗어났지만, 시장논리에 종속되어 버림.

 

예술가들의 창작물들을 구매할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르주아지.

그러나 부르주아들의 예술적 식견은 봉건 제후나 귀족들보다 한참 부족함.

예술가들은 부르주아들을 비판하면서 예술을 고상한 정신적 가치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간주함.

 

"예술은 진리와 도덕을 추구하는 활동도 아니고,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물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도 아니다"

 

- 19세기 말, 예술의 자율성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을 위한 예술(유미주의)"이 나타남.

 

예술의 자율성 획득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등장한 개념이 "무관심성"

(미적) 무관심성: 자기 이해가 동기가 되어 있지 않은 태도, 즉 대상을 사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는 태도.

-  영국 취미론(섀프츠베리, 허치슨)에서 태동했지만, 칸트가 이를 근대미학의 핵심 개념으로 확립함. 진/선/미 삼자가 서로 다른 성격의 것이라는 관념은 칸트에 이르러 비로소 확립됨.

 

무관심성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거센 도전을 받음.

마르크시즘의 사례를 받은 이론가들은 무관심성의 몰역사성과 이데올로기적 성격 비판.

 

루카치

 

칸트의 무관심성의 한계는 관념론적 방법, 즉 경험과 대상을 주관주의적으로 고립시켜 고찰하는 철학적 입장에서 기인함.

'미적인 것'은 사회적·역사적 삶과 연관되어 있음. 미적·예술적 경험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주관이 감각적·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것이지 결코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쉽게 인식할 수 있음.

 

벤야민

 

무관심성에 대해 상세하게 논하지는 않았음. 그러나 무관심성의 한계가 은연중에 드러남.

벤야민은 현대 산업사회의 매체기술적, 사회문화적 상황의 변화에 주목함.

기술복제 매체에 의한 아우라의 위축과 지각방식의 변화는 이제 더 이상 주관이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세부적인 감각적 특질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를 성찰할 수 없음.

루벤스의 전통 회화를 감상할 때 필요한 주의 집중, 침잠과 같은 태도는 영화 등 새로운 매체에서 취하기 어려움

 

부르디외

 

실증적, 비판적 사회과학의 토대에서 무관심성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함.

미적 대상에 대한 초연하고 사심없는 태도, 예술작품의 형식적 특질을 높이 평가하는 차별화의 감각은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선호를 반영할 뿐임.

 

아도르노

 

무관심성의 의의와 한계를 되짚어 봄

 

무관심성의 공:

칸트가 무관심성 개념을 경험함으로써 미적 경험의 주요한 국면들을 밝혔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함.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미적 경험에 있어서 감상자와 대상 사이의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함.

아도르노는 칸트의 이런 입장이 예술이 직접적인 욕망과 경험 현실로부터 차별화했다고 봄.

 

무관심성의 과:

무관심성은 예술가들이 현실과 담을 쌓음으로써 지배적 현실을 수수방관하도록 방조함.

예술가들이 정치, 경제, 종교 등 예술 바깥의 힘으로부터 벗어나 형식적 세련됨이나 우아함과 같은 아룸다운 가상의 세계로 도피해 버릴 여지를 남겨 둠.

현실의 고통과 억압을 참고 견디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기존의 어두운 현실이 지속되는 데 일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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