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가치와 삶/영미분석

미적 태도론과 조지 디키의 반론

DDTKk 2015. 6. 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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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미학에서 미적 경험은 점차 인식론, 윤리학에서 독립적인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그 산물은 ‘무관심성’ 개념이다. ‘관심’이 개인의 이익이나 유용성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개념인 반면에, ‘무관심성’은 그러한 저변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17세기 섀프츠베리의 미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무관심성은 20세기 이후 현대 영미미학에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미적 태도론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개념적인 불명료함과 논증적 부당성을 지적하는 진영이 서로 대립하였다.


*. 미적 태도론을 대표하는 이론가들은 벌로우(심적 거리), 스톨니츠(미적 주목), 비바스, 올드리치(미적 감지) 등이며, 이들은 무관심성 개념을 주관의 심리적 경험 내지는 지각이론의 틀에서 긍정적으로 계승하였다.
스톨니츠에 따르면 미적 태도는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 간에 인지의 대상을 그 자체를 위해서 무관심적으로, 공감적으로 주목하고 관조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관심성’이다. 비례, 균형, 통일과 같은 전통적인 미의 범주들 뿐 아니라 숭고함, 심지어 추한 대상조차도 무관심적 주목의 태도를 취하면 미적 대상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관심적인 주목의 태도는 미적 지각 태도로서, 이해관계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실제적 지각 태도와는 달리 대상을 대상이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혹은 느껴지는 대로 단순히 향수하기 위해 주목하는 태도이다.


*. 스톨니츠와 마찬가지로 미적 태도론을 지지하는 비어즐리:
"작품을 옳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지각적 성질이 아닌 요소, 즉 작가의 의도, 사회적 역사적 배경 등을 배제해야 한다"


*. 그러나 조지 디키를 위시한 이론가들은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의심했다.
(문학작품은 인식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문학작품에서 인식적 가치를 배제하면 예술의 가치를 모호하게 만듦)
이들은 미적 경험의 고유성이나 독자성이 확립될 수 없음을 보이고자 했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저변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 감상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는 스톨니츠의 주장에 대해, 디키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무관심적 태도 일반을 부정한다.

1) 악곡 분석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음악작품을 감상
2) 그림을 보고 다른 아는 사람 생각에 빠짐.
3) 무관심적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함

스톨니츠는 1)과 2)를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지 않는 사례로 간주한다. 디키는 2)의 경우 작품에 전혀 주목을 하고 있지 않으며, 작품을 옳게든 그르게든 감상하지 않고 있는 태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3)의 감상자와 1)의 감상자가 서로 동일한 대상을 상이한 동기를 갖고 바라본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주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작품에 대해 다른 종류의 주목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각기 작품의 다른 특성들에 대해 주목한다는 것이다. 비바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사회 비판적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 읽힐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으로까지 나아가는데, 디키는 작품을 사회 비평으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이 갖는 여러 특성들 중 한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며 이를 비미적으로 파악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반론한다.


*. 디키는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수많은 속성들 중에 일부에 치우치거나 전부를 파악하는 것이며, 무관심한 태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디키의 주장이 옳다면 ‘미적 대상’이나 ‘미적 경험’이 재정의되어야 하며, 이는 미학이론의 재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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