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가치와 삶/대륙

아도르노 문화산업론과 문화연구의 비판적 관점

DDTKk 2015. 12. 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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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문화산물들이 기계적으로 대량 복제되고 대량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됨.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과학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함.

그들의 두 가지 경험이 문화산업론의 단초가 됨: 1) 히틀러가 매스컴을 다재다능하게 활용함 / 2) 미국 망명 이후 소비사회와 문화산업의 엄청난 힘


문화산업론은 후기자본주의의 경제적 논리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퍼졌다고 진단함.

1)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들의 질적인 관계는 상품들 사이의 양적인 관계로 대체되어 버렸고,

2) 대중들은 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파시즘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쉽게 현혹되고 원자화되어 있는 존재로 전락.

이러한 세태가 압축적으로 집약된 개념이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은 독점자본주의의 단계에서 완성됨. 문화는 원래 산업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인간적인 가치와 창조성을 표현하며, 인간을 영예롭게 함.

그러나 소비를 위한 산업의 틀 속으로 편입되면서부터 그것은 타락함.

문화산업의 목적은 철저한 이윤 추구에 있으며, 상품물신성의 구도 속에서 문화의 산물들이 주는 사용가치가 물러나고 교환가치가 그 자리를 대체.

문화산업은 철저히 대중들의 허위욕구에 의존하며, 허위욕구는 문화산업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

문화산업의 생산자는 대중에게 오락과 유흥을 제공하여 현실의 고통을 잊게 만들고, 저항의식을 억누름.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은 사회적 객체로서 자기의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림.


**문화산업론에 대한 반론**


문화연구가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대중문화를 유일하고 포괄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함.

하나의 일반적인 문화 혹은 대중문화만 존재하는 것은 아님. 오히려 대중문화는 이질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존재. 

↔ 헤브디지의 하위문화 개념은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의 환원론적인 이론과 대비됨.

헤브디지에 따르면 하위문화는 "보다 광범위한 문화 내에 위치하면서 사회, 역사적 구조 내에서 특정한 사회집단이 직면한 특정한 입장과 특수한 갈등들에 부합하는 문화형태"로 정의됨.

문화란 결코 단일하고 통일적인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선언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

단일한 계급 내에서도 각기 다른 성격의 하위문화가 존재할 수 있음.


문화연구가들은 문화산업론이 소비자를 수동적 억압의 상태로 상정한다고 비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우려대로 대중문화는 허위적인 욕구를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주입하지는 않음.

대중문화는 역동적이고 갈등적임. 대중문화는 사회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음.

더글러스 켈너, "대중예술의 생산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사회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이데올로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동질적이고 통합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해 주는 그런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음.


대중은 대중문화의 산물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제멋대로 사용함.

반면 문화산업론은 체념과 절망의 정치학으로 흘러 버림.

문화연구가들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입각하여, 대중문화를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거대한 정치적인 가능성의 장으로 파악함.

피스크: 마르크스와 문화산업론이 간과했던 '소비' 개념에 주목하며, 대중이 문화산물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의미와 쾌락을 생산해 냈다고 봄.

(대중문화는 도피적이고 저항적인 사용을 위한 기회를 제공함).

패스모어: 관객이 문화 대상에 부여한 의미와 기능은 결코 생산자와 공급자가 의도하거나 예견한 것과 결코 같지 않음.

예) 롯데리아 광고, "니들이 게맛을 알어?" _ 햄버거는 안 팔리고 신구의 햏자 이미지만 소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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