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와 벤야민은 학문적 동지였지만, 기술복제시대의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였음.
벤야민은 1936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는데, 아도르노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함.
벤야민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다면, 아도르노는 음악을 통해 이를 비판하였음.
1.1 아우라의 붕괴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아우라의 상실을 초래함.
'아우라'는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신비스런 분위기이자, 주체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특별한 주관과 경험.
<최후의 만찬>은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었음(복제품에서는 느낄 수 없음).
그러나 기술복제시대에는 원본-복제본 구분 자체가 무의미.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에 대해 진정한 미적 체험의 상실을 아쉬워하면서도, 예술의 정치적 기능 전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 표현.
1.2 진지한 음악과 가벼운 음악의 분열(아도르노)
-. 가벼운 음악: 독점자본주의하에서 상품성을 강하게 띠는 음악
-. 진지한 음악: 상품으로서의 운명에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자기반성성을 드러내는 음악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가벼운 음악/진지한 음악의 구분이 사살싱 무의미해짐
모든 문화산물이 문화산업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 상품적 성격.
전통음악에서는 가벼운 음악과 진지한 음악의 대립적 계기 사이에서 변증법적 과정이 일어났음.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그러나 문화산업의 시대는 그런 거 없음.
벤야민이 말하는 전통 가치들의 청산은 변증법적 긴장 상실을 의미.
2.1 제의가치에서 전시가치로(벤야민)
기술적 복제시대에는 아우라가 붕괴되고 제의가치가 무력화되는 동시에, 전시가치가 대두.
중세 예술작품이 종교적 제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근대에는 세속적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형태로 변화됨.
그러나 사진술이라는 복제기술이 탄생하면서, 전통 예술은 보수적으로 맞섬(예술을 위한 예술론).
사진은 친숙하고 당연시되었던 것들을 낯설게 보이게 함.
새로운 예술작품은 기존의 예술작품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지각방식과 수용 태도를 요구함.
2.2 사용가치의 퇴거와 교환가치의 지배(아도르노)
유행가를 통해 대중들이 경험되고 있다고 선전되는 감각적 즐거움이란 실상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의 산물.
즉 추상화된 교환가치가 기만적 형태로 나타남.
벤야민이 기대했던 기술복제시대의 촉각화된 예술수용을 비판함.
기술복제시대는 전통가치의 청산이 아니라 전통가치의 물화 내지는 물신화를 초래.
소비자들은 실제로 토스카니니 연주회 티켓을 사기 위해 그 자신이 지불한 돈을 숭배.
3.1 정신산만, 예술의 정치화(벤야민)
아우라를 가진 예술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몰입과 침잠이라는 수용방식이 필요함. 즉 개인적으로 감상이 이루어짐.
(정신을 집중하여 예술작품에 완전히 빠져, 그것과 일체되는 경험이 필요함)
그러나 영화 보기와 같은 기술복제시대의 정신분산적 감각 수용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감상태도는 전체에 대한 미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움.
→ 해방적 잠재력
3.2 듣기의 퇴행과 음악의 물신화(아도르노)
정신분산적 음악 수용=가벼움과 진지함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 상실
음악적 총체성의 상실. 베토벤의 <운명>의 전체적 구조는 안 들리고 초반의 "빠바바밤"만 들림.
-. 원자적 청취: 귀에 듣기 좋은 소리, 친숙한 선율을 강조함
-. 구조적 청취: 음악작품이 의미있는 전체로서 전개되는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논리적, 지적 지각 태도
원자적 청취-탈집중화-정신분산은 청취능력의 퇴행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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