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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 시와 음악과 함께 동류의 지위를 얻게 된 까닭은 이 모든 활동들이 다같이 미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공통적인 요소 때문.
근대적 예술 체제의 성립은 회화가 시 못지 않은 의미와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끈질긴 주장을 통해서임.
※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체를 사용하는가, 정신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 Liberal Arts(음악, 시)
- Vulgar Arts(회화)
를 구분하였음.
*. 그림이 단순한 모방, 곧 이미지의 제작이 아니라, 이념이나 그와 비슷한 존재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과정에서 "Fine Arts"의 개념이 탄생. 이 과정에서,
1)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념의 철학
2) 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수정
되는 과정이 필요.
*. 르네상스 시대에 시의 활동과 회화의 활동간의 긴밀한 유대가 성립함으로써, 그들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동일한 활동이라는 이론의 수립으로까지 나아감.
(시와 회화, 음악이 공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등장하면서 근대적 Fine Arts의 체제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음)
*. 시와 음악, 회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추구되고 있다는 목적이란? 미(美)이다.
→ 고전주의 아카데미를 통해 표명되어 왔던 이상미(ideal beauty)나 이상화된 자연(idealize nature)으로서의 미의 이론이 확립됨.
→ 'Beaux-arts'라는 말이 등장
샤를 바뙤
*. 바뙤에서 근대적 예술 체제의 형성을 위한 결정적인 발걸음이 내디뎌지게 되었음.
*. '쾌'를 목적으로 하는 'fine arts'와, 순전히 유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mechanical arts'를 서로 구분함.
(웅변과 건축은 쾌와 유용성이 결합된 산물)
*. fine arts에 음악·시·회화·조각·춤을 포함시킴.
*.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이 모든 예술들의 핵심 원리.
달랑베르
*. 백과전서파 학자 달랑베르는,
1) 철학, 2) 역사, 3) 모방으로 구성된 인식을 서로 명백히 구분함.
*. 시, 음악, 회화, 조각, 건축이 예술이다.
그는 예술을 기술로 분류하게 된 'liberal arts'와 'mechanical arts'의 구분을 철폐함.
Liberal art:
1) 그 목적이 즐거움이 되는 예술
2) 문법, 논리학, 도덕 등 필요하고 유용한 liberal art
※ 달랑베르는 모방활동에 건축을 포함시켰음.
신구논쟁의 등장
*. 예술의 체제의 성립은 근대적 사고의 소산일 수 있으나, 그러한 체제에 속해 있는 예술의 개념은 전 근대적 소산.
고전주의 이론가들에게 과학과 예술은 보편적 자연의 질서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며, 단지 그러한 질서의 상이한 측면이 각각 과학과 예술 속에서만 드러날 뿐. 그들(고전주의자)에게 있어서 예술은 규칙에 입각한 일종의 이성적 작업.
*. 오늘날의 입장에서 예술은 과학이거나 그에 밀접한 준 과학도 아님.
(예술과 과학이 서로 분리되는 사고의 등장)
고전주의 미학사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생성되는 가운데, 근대적인 예술개념이 잉태됨.
*. 신구논쟁의 등장은 예술의 근대적 개념으로의 지향의 초석이 되었음.
신구논쟁의 결론: 수학적 지식의 축적과 같은 기준에서 보면 근대인들이 우월하나, 상상이나 취미와 같은 다른 분야에서는 고대와 근대간에 명확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 예술과 과학을 서로 분리해서 보는 사고. 훗날 뒤보의 사고로 이어짐.
뒤보
"우리에게 대상의 미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성 뿐이요, 이성은 예술작품에 대한 우리의 감상 활동에 필요한 것도, 충분한 것도 아니다"
*. 뒤보는 예술가는 차가운 머리로 법률책을 들고 작업에 임해서도 안 되며, 비평가는 경직된 일반적 규칙을 관객에게 주지시키고자 해서도 안됨.
*. 미학 이론의 문제가 출발해야 할 곳도,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할 곳도 상상과 감정이어야 함.
- 상상의 창조와 감정의 환기라는 근대적인 개념에 접근함으로써, 예술은 liberal art의 체계에 나란히 묶여 있던 과학의 범주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음.
☆ 근대적 예술의 개념이 확립되는 데에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
1. 지성에 대한 상상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2.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철학적으로 복권되지 못했다.
*. 신적 영감의 활동이라는 시에도 규칙이 적용될 수 있고, 규칙에 입각한 합리적 제작 활동인 그림에도 영감이 작용한다는 사고가 널리 퍼지면서, 예술과 미의 등식이 자동적으로 성립됨.
참고문헌: 오병남, 『미학 강의』, 서울대학교출판부
근대적 예술 체제의 성립은 회화가 시 못지 않은 의미와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끈질긴 주장을 통해서임.
※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체를 사용하는가, 정신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 Liberal Arts(음악, 시)
- Vulgar Arts(회화)
를 구분하였음.
*. 그림이 단순한 모방, 곧 이미지의 제작이 아니라, 이념이나 그와 비슷한 존재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과정에서 "Fine Arts"의 개념이 탄생. 이 과정에서,
1)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념의 철학
2) 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수정
되는 과정이 필요.
*. 르네상스 시대에 시의 활동과 회화의 활동간의 긴밀한 유대가 성립함으로써, 그들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동일한 활동이라는 이론의 수립으로까지 나아감.
(시와 회화, 음악이 공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등장하면서 근대적 Fine Arts의 체제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음)
*. 시와 음악, 회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추구되고 있다는 목적이란? 미(美)이다.
→ 고전주의 아카데미를 통해 표명되어 왔던 이상미(ideal beauty)나 이상화된 자연(idealize nature)으로서의 미의 이론이 확립됨.
→ 'Beaux-arts'라는 말이 등장
샤를 바뙤
*. 바뙤에서 근대적 예술 체제의 형성을 위한 결정적인 발걸음이 내디뎌지게 되었음.
*. '쾌'를 목적으로 하는 'fine arts'와, 순전히 유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mechanical arts'를 서로 구분함.
(웅변과 건축은 쾌와 유용성이 결합된 산물)
*. fine arts에 음악·시·회화·조각·춤을 포함시킴.
*.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이 모든 예술들의 핵심 원리.
달랑베르
*. 백과전서파 학자 달랑베르는,
1) 철학, 2) 역사, 3) 모방으로 구성된 인식을 서로 명백히 구분함.
*. 시, 음악, 회화, 조각, 건축이 예술이다.
그는 예술을 기술로 분류하게 된 'liberal arts'와 'mechanical arts'의 구분을 철폐함.
Liberal art:
1) 그 목적이 즐거움이 되는 예술
2) 문법, 논리학, 도덕 등 필요하고 유용한 liberal art
※ 달랑베르는 모방활동에 건축을 포함시켰음.
신구논쟁의 등장
*. 예술의 체제의 성립은 근대적 사고의 소산일 수 있으나, 그러한 체제에 속해 있는 예술의 개념은 전 근대적 소산.
고전주의 이론가들에게 과학과 예술은 보편적 자연의 질서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며, 단지 그러한 질서의 상이한 측면이 각각 과학과 예술 속에서만 드러날 뿐. 그들(고전주의자)에게 있어서 예술은 규칙에 입각한 일종의 이성적 작업.
*. 오늘날의 입장에서 예술은 과학이거나 그에 밀접한 준 과학도 아님.
(예술과 과학이 서로 분리되는 사고의 등장)
고전주의 미학사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생성되는 가운데, 근대적인 예술개념이 잉태됨.
*. 신구논쟁의 등장은 예술의 근대적 개념으로의 지향의 초석이 되었음.
신구논쟁의 결론: 수학적 지식의 축적과 같은 기준에서 보면 근대인들이 우월하나, 상상이나 취미와 같은 다른 분야에서는 고대와 근대간에 명확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 예술과 과학을 서로 분리해서 보는 사고. 훗날 뒤보의 사고로 이어짐.
뒤보
"우리에게 대상의 미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성 뿐이요, 이성은 예술작품에 대한 우리의 감상 활동에 필요한 것도, 충분한 것도 아니다"
*. 뒤보는 예술가는 차가운 머리로 법률책을 들고 작업에 임해서도 안 되며, 비평가는 경직된 일반적 규칙을 관객에게 주지시키고자 해서도 안됨.
*. 미학 이론의 문제가 출발해야 할 곳도,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할 곳도 상상과 감정이어야 함.
- 상상의 창조와 감정의 환기라는 근대적인 개념에 접근함으로써, 예술은 liberal art의 체계에 나란히 묶여 있던 과학의 범주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음.
☆ 근대적 예술의 개념이 확립되는 데에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
1. 지성에 대한 상상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2.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철학적으로 복권되지 못했다.
*. 신적 영감의 활동이라는 시에도 규칙이 적용될 수 있고, 규칙에 입각한 합리적 제작 활동인 그림에도 영감이 작용한다는 사고가 널리 퍼지면서, 예술과 미의 등식이 자동적으로 성립됨.
참고문헌: 오병남, 『미학 강의』,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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